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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인 체험과 실험, 코로나 치유법에 힌트를 준다 - 동아일보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유영하는 우주 비행사.
달, 화성, 그리고 또 다른 행성으로 우주 탐사를 떠났던 인류에게 크나큰 과제가 떨어졌다. 바로 지구를 뒤덮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다. 우리에게 멀게만 느껴지던 우주 탐사 기술이 방향을 틀어 코로나19에 집중하고 있다. 우주비행사를 위한 원격 진단과 미세 중력에 대한 연구, 우주생물학과 NASA의 슈퍼컴퓨터 등 우주 탐사 기술이 인류의 건강을 지키고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코로나19 연구에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인체의 변화

국제우주정거장(ISS)은 일종의 실험실이다. 우주 비행사들은 온도, 습도, 압력 등 신체에 가해지는 모든 조건이 지구와 다른 우주에서 신체가 어떻게 적응하는지 연구하고 있다. 인간의 신체는 심혈관, 근육 골격, 신경 감각, 면역력, 생식계와 행동에 이르기까지 우주 환경에 대한 적응이 매우 빠르고 극적으로 적응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인체의 변화 역시 우주 공간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중적인 분석을 거쳐야한다.

흔히 우주 공간을 무중력 상태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미세 중력’이다. 그동안 우주에서 인체와 장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기 위해 미세 중력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국제 우주정거장은 400km 고도에서 지구를 공전한다. 이 고도에서 중력은 지구 표면의 약 90%에 달하지만, 궤도상에 있는 물체는 연속적인 자유낙하 상태에 있으므로 실제 체감하는 중력은 매우 약해진다. 따라서 우주비행사는 우주선 내부에 머무르거나 우주선 밖에서 유영을 할 때 허공에 떠 있으며, 무거운 물체도 쉽게 들어 움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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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 중력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 우주 비행사가 우주정거장에서 몇 달간 머무를 경우, 근육과 뼈는 미세 중력으로 인해 약화된다. 운동량도 현저히 줄어들어 우주 비행사들은 1 달 만에 뼈 질량이 3~5% 손실되고 근육 질량 또한 줄어든다. 따라서 우주비행사들은 우주로 떠나기 전 적응 훈련을 받고, 지구로 돌아온 뒤 약 1개월 정도는 병원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러한 우주비행사의 재활치료는 코로나19로 인해 장기간 입원으로 쇠약해진 환자를 돌보는 방법과도 연관이 있다. 미세 중력으로 인해 일부 우주 비행사들은 신경-안구 증후군(Space Flight-Associated Neuro-ocular Syndrome, SANS)을 경험하기도 한다. 네이처에 따르면, 신경-안구 증후군은 우주 비행 중 뇌압 상승으로 인해 시력에 영향을 준다. 비행 전후 우주 비행사들의 MRI 검사를 해본 결과, 양측 시신경 디스크 부종, 맥락막 및 망막 주름, 시신경 굴절 등의 질환이 발견되었다. 중력이 낮은 우주에서는 체액이 상체에 분포되면서 뇌의 압력 증가로 인해 얼굴이 붓고, 코 막힘, 후각과 미각 손상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NASA에서 수석 의료 고문으로 일했던 내분비학자 사라린 마크 의학박사에 따르면 신경-안구 증후군에 대한 연구는 코로나19 환자에서도 미각 상실이 나타나는 증상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주 비행 후 눈 망막의 단층 촬영 결과, 망막신경 섬유층이 두꺼워지고 맥락막 주름이 심하게 나타났다. 출처·네이처

세포 성장 연구하기 좋은 플랫폼

세포를 3차원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우주는 세포 성장을 연구하기 훌륭한 플랫폼이다.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캠퍼스의 화학 및 분자 생물학, 생화학 교수인 레이첼 마틴 박사는 지구의 미생물에서 발견되는 프로테아제의 연구를 통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항바이러스 개발에 돌입했다. 프로테아제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투할 때 바이러스를 복제하기 위해 활용하는 효소다.

프로테아제는 다른 단백질을 잘라서 더 작은 조각으로 분해하는데, 소화 작용부터 세포 유지에 이르기까지 많은 과정에서 쓰인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의 긴 사슬로 만들어지며, 프로테아제는 이러한 사슬을 더 작고 작은 조각으로, 때로는 구성 요소인 아미노산까지 잘라낼 수 있다. 우주 생물학의 관점에서 프로테아제는 흥미로운 분자다. 보편적인 생명체는 단백질을 갖고 있으며, 단백질을 가진 모든 것은 프로테아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마틴 연구팀은 프로테아제를 수집하고 분자 모델링을 사용해 구조적 특성을 예측하고 있다. 프로테아제가 없으면 바이러스는 비기능적 단백질을 생성하며 결국 세포에 의해 분해된다. 프로테아제의 구조를 모델링하고 약물에 의해 표적화될 수 있는 분자 영역을 식별해 비활성 상태로 만들 수 있다. 이러한 프로테아제 억제 약물은 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의 바이러스 부하를 줄여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을 치료하고, 백신이 제공될 때까지 환자의 회복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우주정거장은 원격 진료의 효시

우주 탐사와 코로나19의 또 다른 상관관계는 원격 진단과 원격 의료다. 우주 탐사가 시작된 이래로 우주 비행사의 건강을 지구에서 모니터링하는 원격 의료 프로그램은 원격 의료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전염성이 높은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세계 의료 시스템과 국가 전체에 큰 부담을 준다. 병원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한 환자 과밀과 자원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원격 진료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NASA와 우주정거장은 최첨단 원격 의료 시스템과 지원팀을 통해 우주비행사들이 미션을 수행하는 동안 그들의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한다. NASA는 1964년 처음으로 우주비행사의 건강을 관리하기 위한 원격 의료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개발했다. 우주복에 부착된 원격 생체 모니터링 장치와 우주선 내부의 의료시스템을 통해 우주비행사의 건강 상태를 측정하고 데이터를 지구로 보낸다.

우주비행사를 위한 원격의료 시스템. 출처·NASA
최근에는 미국 의료진이 우주정거장에 머물던 우주비행사 혈관에서 발견된 혈전을 원격의료를 통해 치료했다. 스테판 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혈액학과 교수는 NASA과 공동으로 우주정거장에 머무는 우주비행사의 목에서 발견된 혈전을 원격의료로 치료한 전 과정을 공개했다.

당시 우주정거장의 한 우주비행사의 목 정맥에서 심부정맥 혈전증(DVT)을 발견됐는데, 우주정거장에 거주한 지 2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NASA 측은 몰 교수에 도움을 청해 우주정거장에 상비되어 있는 항응고제를 처방했다, 치료 43일 차에는 보급용 화물 우주선을 통해 항응고제가 추가로 전달되었으며, 전체 90일간 치료 과정에서 우주비행사는 NASA의 원격 의료팀의 도움으로 스스로 자신의 목에 초음파 검사를 실시해 혈전을 관찰했다. 이러한 원격의료 기술은 스마트, 웨어러블 기기, VR 기기의 발전에 힘입어 더욱 보편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코로나 연구에 투입된 NASA의 슈퍼컴퓨터

지구, 행성, 항공 우주, 태양 물리학 및 천체 물리학 프로젝트를 위해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해온 NASA의 슈퍼컴퓨터가 코로나19라는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NASA는 슈퍼컴퓨팅 자원을 코로나19 연구에 사용하는 컨소시엄에 참가해 60여 개의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이 컨소시엄에는 IBM, HP,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다수의 대학이 참여했다. 슈퍼컴퓨터는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와 상호 작용하는 방법에 대한 기초 과학부터 유전적 위험 요인, 잠재적인 치료 약물 스크리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 해결에 가동 중이다.

NASA의 슈퍼컴퓨터는 에임스(Ames) 리서치 센터에 있는 플레이아데스(Pleiades)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슈퍼컴퓨터 중 하나인 플레이아데스는 2019년말 기준 평균 5.95페타플롭, 최고 7.09페타플롭(초당 7.09억 부동 소수점 연산)의 성능을 나타내며 세계에서 32번째로 강력한 컴퓨터로 꼽힌다.

NASA의 슈퍼컴퓨터 플레이아데스. 출처·NASA
그동안 이 시스템은 NASA의 가장 큰 슈퍼컴퓨터로 행성 주변 기단의 흐름을 시뮬레이션하고, 블랙홀의 활동을 연구하기 위해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해왔다. 또 항공이나 항공 우주 차량을 설계하는 데도 사용됐다. 이때 각종 물리화학적 법칙에 따라 데이터를 가동해 처리하는 과정은 코로나 바이러스 연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연구하기 위해 원자 수준으로 확대해 각 분자와 세포의 움직임과 반응을 살펴보는 시뮬레이션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해하는 데 강력한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NASA에 따르면 슈퍼컴퓨터는 코로나19 환자의 급성 호흡 곤란 증후군(ARDS)의 유전적 위험 요인을 조사하고 있다. ARDS는 폐에 체액이 축적될 때 발생하는 코로나19의 합병증으로, 중증 환자의 경우 인공호흡기가 필요하다. NASA 연구팀은 우주에서 생물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연구해온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ARDS와 관련된 유전적 변이를 연구하고 있다. ARDS에 걸리기 쉬운 유전적 위험 요소를 발견한다면, 합병증 위험이 높은 환자의 증상이 심각해지기 전에 잠재적으로 식별하고 치료를 개선할 수 있다.

또 NASA 연구원들은 MIT 대학의 연구팀과 함께 치료제의 분자 구조를 3D화해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포 공격을 억제할 수 있는 잠재적 분자를 탐지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이 기계 학습 알고리즘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간의 생물학적 유사성 때문에 사스 바이러스를 표본으로 실험을 통해 30만 개 분자 구조를 학습하게 된다. 훈련된 알고리즘은 가장 빠르게 도입할 수 있는 기존 치료제 목록에서 코로나 19에 적합한 약물을 찾는 게 목표다.

우주에서 격리를 견디는 방법

우주에서의 경험이 코로나19와의 싸움에 도움이 도는 또 다른 중요한 사례는 ‘고립과 분리’에 대한 적응이다. 우주 비행사는 몇 달 동안 가족과 사람들을 떠나 극한의 공간에서 격리된다. 고립에 대처하는 방법, 상호 작용하는 방법, 기분, 수면 패턴 등 모두 우주 의학에 대한 실시간 연구 주제로서 코로나19로 인해 격리가 필요한 일반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내용이다.

사회적 고립은 우리의 건강에 해를 끼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주 비행사처럼 코로나19의 경우 사회적 격리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를 발생시킨다. NASA의 인간 연구 프로그램(Human Factors and Behavioral Performance Element, HRP)의 수석 과학자인 톰 윌리엄스는 사회적으로 격리된 상황을 극복하는 다양한 방법을 제안했다. 먼저 분리된 공간에 있더라도 사회적인 소속감과 정체성을 느끼는 게 필요하다. 우주 비행사가 우주 탐사를 통해 전 세계인에게 희망을 전해주듯이, 재택근무를 통한 자신의 일과가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를 부여하도록 한다. 또 여가 활동을 위한 시간과 수면, 작업 일과를 철저히 분리해 관리해야 한다. HRP 연구팀은 프로그래밍 가능한 조명 시스템을 통해 수면 시간을 놓치기 쉬운 우주 비행사의 수면 품질을 잠재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고립된 상태에서 감정을 조절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다. 자신의 강점을 객관화하고, 상태를 기록하기 위해 매일 일기를 적는다면 큰 도움이 된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명상도 좋은 정신 훈련법이다. 화상 채팅으로 가족과 꾸준히 의사소통을 하고, 창의적인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면 긍정적인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62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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