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진 사기그릇처럼 지름 305m짜리 초대형 접시 안테나가 완전히 부서졌다. 접시 위에는 조각난 안테나의 잔해가 가득하다. 지난해 12월 1일(현지시간) 카리브해 푸에르토리코에서 최후를 맞은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의 모습이다. 1963년부터 가동된 아레시보 망원경이 잦은 파손 사고 끝에 이날 결국 대파된 것이다. 이런 대형 전파망원경은 지구에서 흔치 않다. 게다가 지적능력을 지닌 외계생명체가 보냈을지 모를 인공적인 전파를 찾거나 지구 주변의 소행성 움직임을 분석하는 등 아레시보 망원경은 마지막 순간까지 맹활약을 했다. 이 때문에 당시 붕괴 소식은 천문학계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큰 아쉬움을 남겼다.
■달 표면 전파관측 ‘성큼’
그런데 아레시보 전파망원경보다 3배 큰 초대형 전파망원경이 건설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새 망원경의 무대는 지구가 아닌 인류 머리 위의 달이다. 지난주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달에 전파망원경을 짓자는 과학자들의 아이디어에 50만 달러(5억6000만원)를 투입했다고 밝혔다. 현재 상식으로는 황당할 법한 과학적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게 돕는 NASA의 ‘혁신고급개념(NIAC) 프로그램’에 따라 이뤄진 지원이었다.
이 아이디어가 눈에 띄는 큰 이유는 달 표면의 운석 충돌구를 전파망원경의 핵심 장비인 접시 안테나로 활용하자는 구상 때문이다. 지구의 전파망원경은 금속판자 수천개를 이어붙여 지상에 오목한 접시 안테나를 만든다. 이에 비해 NASA가 추진하는 달 전파망원경은 접시 안테나를 달 표면에 생긴 운석 충돌구로 대체한다. 우주에서 날아드는 전파를 빗물에 비유한다면 지구 전파망원경은 따로 구입한 세숫대야를, 달 전파망원경은 땅에 파인 웅덩이를 활용해 받아내는 셈이다.
전파를 집중시키는 안테나의 전자장비 기능은 모기장처럼 생긴 넓은 금속망을 충돌구 위에 펼쳐서 해결한다. 금속망을 달로 옮길 때에는 로켓 한 대에 접어 넣었다가 달 현장에 도착하면 보따리 풀 듯 꺼내 설치한다. 중량 자체도 가벼워 운송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빅뱅 뒤 우주비밀 규명 도전
NASA는 달 전파망원경으로 뭘 하려는 걸까. 우주를 탄생시킨 대폭발인 ‘빅뱅’ 뒤부터 첫 별빛이 나타날 때까지 지속된 수억년간의 공백 기간, 즉 ‘암흑 시대(Dark Ages)’를 연구하려는 것이다. 암흑시대는 빛날 별 자체가 없었던 만큼 실체는 비밀에 싸여 있다. 하지만 당시 우주를 채웠을 가스가 형성한 ‘장파장 전파’를 전파망원경으로 분석하면 무엇이든 단서가 발견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이런 장파장 전파를 지구에선 관측할 수 없다. 대기권이 튕겨내서다. 달에서라면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장파장 전파를 잡아내려면 전파망원경이 클수록 좋다. 초대형 충돌구가 많은 달은 전파망원경 건설에 여러모로 최적지인 셈이다. NASA는 이 아이디어가 공식 연구과제로 채택되면 지름 1000m짜리 안테나를 설치할 예정이다. 붕괴된 아레시보 망원경(305m)은 물론, 현존하는 최대 전파망원경인 중국 ‘톈옌’(500m)보다도 훨씬 크다.
■네 바퀴 로봇이 건설 맡아
달 전파망원경의 또 다른 특징은 장난감 자동차를 닮은 ‘듀악셀 로버(DuAxel rover)’로 시공한다는 점이다. NASA가 개발 중인 이 로버는 바퀴 4개를 장착했다. 덩치는 중형 반려견만 하다. 특이한 점은 임무 상황에 따라 바퀴가 한쌍씩 분리된다는 점이다. 자동차로 치면 1열과 2열 좌석이 바퀴와 함께 떨어지는 셈이다.
이런 기능을 활용해 바퀴 한쌍이 충돌구 가장자리에서 금속 와이어를 잡고 버티면 다른 한쌍이 충돌구 아래로 내려갔다가 반대쪽 충돌구 가장자리로 올라가 와이어를 팽팽히 당긴다. 줄다리기를 하는 식이다. 이렇게 해서 생긴 와이어의 장력으로 접시 안테나의 전자장비 역할을 하는 금속망을 텐트 지붕처럼 들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비용은 물론 우주비행사가 현장에 나서지 않기 때문에 인명손실 가능성도 줄어든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패트릭 맥가레이 연구원은 “듀악셀 로버는 대형 안테나를 설치하는 데에서 생기는 많은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며 “지구 밖에서 또 다른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 때 응용될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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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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