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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한국] 수금지화목토천해. 태양계 행성들이 배치된 모양을 보면 문득 유난히 어색하게 보이는 구간이 하나 있다. 바로 화성에서 목성으로 넘어가는 구간이다. 수금지화까지는 행성들이 꽤 가깝게 붙어 있는데, 갑자기 목성으로 넘어가면서 행성 궤도가 굉장히 커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화성과 목성 사이는 유난히 더 넓게 비어 있는 느낌이 든다. 

천문학자 케플러도 이런 화성과 목성 사이 넓은 빈 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둘 사이에 크기가 작아서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행성이 하나 더 숨어 있을 거란 추측을 던질 정도였다. 화성과 목성 사이가 너무 갑작스럽게 비어있는 것 같아서 그 사이에 임의로 행성을 하나 더 두어야 마음이 편안할 정도로 그 빈 구간이 어색했던 모양이다. 

물론 지금은 우리는 화성과 목성 사이에 수많은 작은 소행성들이 모여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이 소행성 벨트의 전체 질량은 다 합하면 약 240경 톤. 달의 겨우 3%밖에 안 되는 질량이다. 이 중에서 가장 크기가 큰 소행성 네 개, 세레스(Ceres), 베스타(Vesta), 팔라스(Pallas), 히기에이아(Hygiea)가 소행성 벨트 전체 질량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덩치 큰 대장 세레스 혼자서 소행성 벨트 전체 질량의 약 30퍼센트를 차지한다. 사실상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 벨트는 ‘세레스와 나머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화성과 목성 궤도 사이에 놓인 수많은 소행성들의 분포. 사진=NASA

그런데 여전히 이런 소행성 벨트의 모습을 보다 보면 문득 과거 케플러가 느꼈던 것과 비슷한 어색한 느낌을 받게 되곤 한다. 왜 하필 이 자리에는 덩치 큰 행성이 아니라 작은 부스러기만 있을까? 원래는 화성과 목성 사이에도 또 다른 행성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이 어떤 사연으로 박살 나고 부스러기만 남은 건 아닐까? 이런 과학적 호기심은 많은 SF 작가와 팬들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사실 오래전 태양계에 행성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이 고대의 우주 전쟁으로 인해 박살나버렸다는 식의 (얼핏 들으면 꽤 그럴듯한?!) 매력적인 상상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이런 상상력에 힘을 실어주는 놀라운 증거가 발견되었다. 과학자들은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 벨트의 수많은 부스러기들이 실은 오래전 존재했던 하나의 거대한 왜소행성의 파편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다.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 벨트가 사실 오래전 존재했던 하나의 왜소행성의 파편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진실은 무엇일까?

#운석에서 발견한 물 분자의 흔적 

2008년 10월 7일 지름 약 4m 크기의 소행성 2008TC3가 지구 대기권으로 진입했다. 이후 소행성은 고도 약 37km 대기권에서 600여 개의 작은 조각으로 쪼개졌다. 소행성 파편들은 아프리카 수단, 나일강과 홍해 사이에 있는 누비아(Nubia) 사막에 떨어진 직후 곧바로 발견되었다. 과학자들이 오래전부터 궤도를 추적해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를 예측한 것. 당시로는 이런 일이 처음이어서 꽤 화제가 됐다. 이 운석들이 떨어진 곳 바로 근처에 있는 기차역의 이름을 따서 이 운석들을 6번 역이라는 뜻의 ‘알마하타 싯타(Almahata Sitta, 줄여서 AhS라고 표기)’라고도 부른다. 

누비아 사막에서 발견된 알마하타 싯타 운석 조각 중 하나. 사진=NASA/SETI/P. Jenniskens
 

이런 운석들은 약 46억 년 전 태양계가 처음 만들어지던 당시의 물질을 고스란히 간직한 타임캡슐이다. 태양계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알고 싶은 과학자들을 위해서 우주가 간간이 지구로 던져주는 작은 선물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런 돌멩이들은 굳으면서 만들어질 때 그 당시의 주변 환경의 온도와 압력에 따라 광물의 종류가 달라진다. 지구에 떨어진 운석 속 광물을 분석하면 그 운석 조각이 떨어져 나오기 전 원래 얼마나 높은 온도와 압력의 환경에서 만들어졌을지를 추적할 수 있다. 

2008년 과학자들은 총 10kg 정도의 알마하타 싯타 운석을 확보했다. 그리고 이번 분석에선 그 중 약 50밀리그램 정도 되는 202번 파편을 채취해 사용했다. 이 운석 샘플을 얇게 깎아 적외선 현미경으로 분석한 결과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바로 이 작은 AhS 운석 조각 속에서 각섬석(amphibole) 광물이 확인된 것이다! 

적외선 현미경으로 촬영한 운석 속 광물. 각섬석이 주황색으로 강조되어 표시되어 있다. 사진=Courtesy of NASA/USRA/Lunar and Planetary Institute

각섬석이 왜 중요할까? 물을 함유한 수화 광물이기 때문이다. H2O 물 분자는 -H와 -OH로 각각 쪼개져서 암석 속 광물에 끼여 들어갈 수 있다. 각섬석의 분자식을 보면 X2-3Y5Z8O22(OH)2로 뒤에 수산화기(hydroxy group)에 해당하는 -OH가 달라붙어 있다. 즉 각섬석은 물이 존재하는 환경 속에서 광물이 굳어 만들어질 때 주로 형성되는 수화 광물이다. 각섬석이 함유한 물 분자의 흔적을 통해서, 이 광물이 얼마나 높은 온도와 강한 압력 속에서 굳어진 것인지를 아주 정확하게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각섬석은 너무 뜨겁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딱 중간 정도의 온도 환경에서 물을 함유하고 있던 광물이 굳었을 때 만들어지는 굉장히 희귀한 물질이다. 

보통 수 미터 크기의 작은 소행성은 대부분 그 중심부의 온도와 압력이 아주 높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물 분자가 다 날아가지 않고 남아 있다. 덕분에 온도가 상대적으로 많이 낮고 압력이 작은 이런 조그마한 소행성의 내부에서는 물을 많이 품은 수화 광물을 기대할 수 있다. 반대로 지구처럼 수천 킬로미터 이상 거대한 크기의 암석 행성 내부는 그 온도와 압력이 너무 높다. 그래서 이런 덩치 큰 행성 중심에서 만들어진 광물에선 물 분자의 흔적을 거의 찾기 어렵다. 

지금까지 지구에 떨어진 운석에서 발견된 수화 광물의 양은 이처럼 극단적인 두 가지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너무 덩치가 작은 소행성에서 굳은 광물이라서 물 분자의 흔적이 아주 많거나 아주 덩치 큰 행성체 중심에서 굳었던 광물이라서 물 분자의 흔적이 거의 없는 경우뿐이었다. 너무 과하지도 너무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중간 정도의 온도와 압력 환경에서 만들어진 수화 광물을 함유한 운석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태양계 소행성 벨트에서 가장 큰 소행성 네 개의 모습. 이번 분석에서 사용한 운석 조각은 아마 이들보다 더 큰 크기의 왜소행성에서 떨어져나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미지=NASA

#왜소행성 정도 규모의 천체였어야 가능했다

그런데 바로 지난 2008년 떨어진 AhS 운석 조각 속에서 바로 그 희귀한 각섬석이 발견된 것이다. 이는 이 운석 조각이 중간 정도의 온도와 압력 환경 속에서 물을 함유한 채 변성 작용을 겪으면서 굳어 만들어진 돌멩이란 사실을 이야기한다. 이 운석에서 발견된 수준의 각섬석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수 미터 크기의 다른 흔한 소행성들보다는 더 뜨겁고 강한 압력이 필요하고, 지구처럼 아예 덩치 큰 행성보다는 덜 뜨겁고 약한 압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대체 어느 정도 규모의 천체여야 이 중간 정도의 온도와 압력 조건을 충족할 수 있을까? 이번 분석에서 연구진은 지름 600~1700km 정도 크기의 큰 소행성이어야 그 내부에서 이런 중간 정도의 온도와 압력 환경을 가질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현재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 벨트에서 가장 큰 대장 세레스의 지름이 약 900km다. 즉 AhS 운석 조각 속 각섬석의 발견은 과거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 벨트에 세레스 못지않은, 아니 세레스보다 더 컸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거대 소행성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2008년 주워온 작은 운석 조각은 그저 조그마한 멸치에서 떨어져 나온 멸치의 살점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그 멸치 자체가 훨씬 큰 돌고래의 살점이었던 셈이다. 

약 50억 년 전 태양계가 형성된 직후 비슷한 궤도를 돌던 세레스 급의 왜소행성들이 부딪히면서 산산조각 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지=ESO

중간 정도의 온도와 압력 환경에서 주로 만들어지는 수화 광물 각섬석은 그간 발견된 탄소질 콘드라이트(carbonaceous chondrite) 운석 대부분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아주 희귀한 광물이다. 이전까지 각섬석이 발견된 건 1969년 2월 멕시코 치와와(Chihuahua)에 떨어졌던 아옌데(Allende) 운석이 유일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롭게 각섬석이 확인된 AhS 운석과 앞선 아옌데 운석은 서로 다른 소행성에서 떨어져나온 파편이다. 

각섬석을 함유한 소행성이 적어도 두 개 이상인 것으로 확인된 만큼, 이런 소행성이 굉장히 많이 존재했을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이런 각섬석이 존재한다는 건 그 광물을 품고 있는 운석 조각이 단순히 수 미터 크기의 조그만 소행성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훨씬 전에 존재했던 1000km 이상의 아주 큰 왜소행성의 일부였다는 뜻이다. 

#오래전 사라진 거대한 왜소행성의 파편? 

흥미롭게도 마침 지난해 말 일본의 하야부사2와 NASA의 OSIRIS-REx 탐사선이 방문해서 샘플을 채취한 두 소행성 류구(Ryugu)와 베누(Bennu)에서도 이런 징후가 포착된 적이 있다. 당시 두 대의 로봇 탐사선이 소행성 샘플을 확보하기 위해서 소행성에 접근해 충돌하는 순간 파편이 튀어 날아오는 장면을 보면, 원래 예상보다 이 소행성들의 성질이 더 질척하고 축축한 것으로 보인다. 두 소행성 모두 물이 거의 없이 그저 바짝 말랐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물을 함유한 수화 광물로 이루어져 있을 것으로 의심된다. 

하야부사2가 2019년 류구 소행성에 성공적으로 접근해 부딪히면서 샘플을 채집하던 순간.

일본의 하야부사2의 류구의 샘플은 현재 정밀한 분석이 진행되고 있다. 또 예정대로 2023년 9월에 OSIRIS-REx가 베누의 샘플까지 가지고 돌아온다면 이 두 소행성에도 AhS 운석처럼 각섬석 등 수화 광물이 존재하는지를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 두 탐사선이 각각 방문한 소행성에서 예상보다 많은 수화 광물의 흔적이 발견된다면, 모두 과거 동일한 덩치 큰 왜소행성에서 쪼개져 나온 여러 형제 조각들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현재 소행성 벨트 전체 질량의 절반은 가장 덩치 큰 소행성 네 개가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가장 큰 세레스 혼자서 소행성 벨트 전체 질량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절반은 모두 모래알부터 마을버스, 빌딩 크기에 이르는 크고 작은 부스러기들로만 채워져 있다. 그런데 만약 이번 분석이 이야기하듯이 과거 세레스 수준의 또 다른 거대 왜소행성이 하나 더 있었다면 재밌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이 나머지 절반에 해당하는 거의 모든 부스러기들이 바로 오래전 존재했던 하나의 거대한 왜소행성이 부서지면서 남은 조각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행성 벨트의 부스러기들은 덩치 큰 행성을 만드는 데 쓰인 적 없는 버려진 찌꺼기들일까. 아니면 한때는 하나의 큰 덩어리로 뭉쳐 있었지만 지금은 다 부서지고 남은 파편일까. 흥미롭게도 이번 연구 결과는 후자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 

#사라진 왜소행성의 모습은 어땠을까

수십억 년 전 화성과 목성 사이에 또 다른 덩치 큰 왜소행성이 존재했다면 그 천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물론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만약 소행성 벨트에 남아 있는 파편을 모두 찾아 깨진 도자기 조각 맞추듯 오래전 부서진 이름 모를 원시 왜소행성의 모습을 복원한다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태양계 최외곽에 있는 왜소행성 에리스의 상상도. 만약 화성과 목성 사이에도 왜소행성이 하나 더 존재했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이미지=NASA

이 이름 모를 원시 왜소행성의 존재를 추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대상이 하나 있다. 바로 달이다. 천문학자들은 약 45억 년 전 갓 만들어진 원시 지구를 향해서 지구의 절반 정도, 화성 정도 크기만 한 원시 행성체가 충돌했고 그 결과 튀어나간 파편들이 모여서 지금의 달이 완성되었다고 추정한다. 그리고 이 달을 낳은 원시 행성체에게 천문학자들은 신화 속 달의 여신 셀레네(selene)의 어머니 ‘테이아(Theia)’의 이름을 붙여 추억한다. 

물론 테이아 역시 오래전 거대한 충돌로 다 부서지고 사라진 가상의 고대 천체이기 때문에 지금은 그 실체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산산조각 난 테이아의 일부가 모여서 달이 되었고, 또 일부는 다 녹아서 지구 품에도 스며들었을 것이다. 또 상당히 많은 테이아의 파편들은 그대로 지구 중력을 벗어나 소행성 벨트의 일부에 아직까지 남아 함께 우주를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약 45억 년 전 지구가 테이아와 충돌하면서 달을 만드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한 영상.

약 45억 년 전 지구가 테이아와 충돌하면서 달을 만드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한 영상.

이처럼 약 45억 년 전 태양계가 형성된 직후에는 테이아와 같은 적당한 크기의 고대 행성들이 100여 개가 떠돌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기에 지금의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 벨트 역시 원래부터 조그마한 부스러기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원래는 테이아 정도로 큰 하나의 천체로 모여 있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태양계 형성 직후 잠깐 뭉쳐 있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부서진 모래성 같은 천체. 소행성 벨트의 기원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이 천체에는 또 어떤 멋진 이름을 지어줄 수 있을까? 

테이아처럼 아주 잘 어울리는 멋진 이름으로, 먼 옛날 화성과 목성 사이에 존재했을지 모르는 고대 천체를 함께 추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X=Ca, Na, K, Mn, Y=Mg, Fe+3, Fe+2, Al, Ti, Z=Si, Al 등 금속 원소가 들어감.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20-01274-z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07920 

https://ift.tt/2M0qROy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6398961/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016703720301058 

https://www.swri.org/press-release/mineralogy-composition-asteroid-carbonaceous-chondrite-meteorite-almahata-sitta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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